"정당한 목적을 위해서는 부당한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오늘 소개해 드릴 영화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한국 영화계에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던 변성현 감독의 2022년 작, '킹메이커'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강직한 정치인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왕으로 만들려는 그림자 전략가. 이 영화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실존 인물(엄창록)의 흥미진진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설경구와 故 이선균 배우의 숨 막히는 연기 앙상블은 물론이고, 유재명, 조우진 등 명품 조연들이 가세해 1970년대 치열했던 선거판의 뒷모습을 아주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그려냈죠.
"정치는 쇼인가, 진심인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킹메이커'의 뒷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나씩 파헤쳐 보겠습니다.

1. 줄거리: 빛이 되고 싶은 자와, 그림자가 되어버린 자의 선거판
영화의 주인공 김운범(설경구)은 부패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험난한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는 국민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지만, 돈과 고무신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여당(공화당)의 꼼수 앞에서는 번번이 낙선하며 고배를 마시죠.
그러던 어느 날, 김운범의 연설에 감명받은 한 남자 서창대(이선균)가 그를 찾아옵니다. 서창대는 선거판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기가 막힌 두뇌를 가졌지만, 북에서 넘어왔다는 출신 성분 때문에 이름조차 알릴 수 없는 신분이었죠. 김운범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창대의 능력을 믿고 그를 자신의 선거 전략가로 맞이합니다.
서창대의 방식은 김운범과 정반대였습니다. "이기는 것이 곧 정의다!"라며 여당의 더러운 수를 여당의 수법으로 똑같이 받아치고, 흑색선전과 이간질 등 온갖 기상천외한 꼼수를 동원해 판세를 뒤집기 시작하죠. 서창대의 눈부신(그리고 어두운) 전략 덕분에 김운범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틈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대의와 신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김운범은 승리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서창대의 방식이 불편해졌고, 평생 운범의 그림자로만 살아야 했던 서창대는 자신도 이제 밝은 곳(세상)으로 나가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여당의 안기부 '이 실장(조우진)'이 서창대의 능력을 탐내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와 협박을 동시에 가해옵니다. 목적은 같았지만 가는 길이 달랐던 두 남자. 과연 이 치열한 선거 전쟁의 끝에서, 서창대는 끝까지 운범의 그림자로 남아 그를 '왕'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2. 관람포인트: 조우진의 미친 존재감과 변성현 감독의 빛의 마법
첫 번째 포인트: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세련된 미장센
변성현 감독은 이 영화에서 '빛과 그림자'를 시각적으로 엄청나게 잘 활용했습니다. 극 중 대중 앞에서 환한 조명을 받는 김운범과 달리, 서창대는 늘 무대 뒤의 어두운 복도나 그림자 속에 서 있는 모습으로 연출되죠. 이 세련된 카메라 구도는 신념(빛)과 수단(그림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두 사람의 묘한 관계를 아주 직관적이고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두 번째 포인트: "뱀이야, 사람이야?" 조우진의 소름 돋는 악역 연기
설경구, 이선균의 불꽃 튀는 연기도 훌륭하지만, 여당의 전략가인 '이 실장' 역을 맡은 조우진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서창대에게 다가가 뱀처럼 교묘하게 이간질하고 협박하는 그의 연기는 영화의 긴장감을 미친 듯이 끌어올립니다.
세 번째 포인트: 가슴을 후벼 파는 서창대의 명대사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어필하며 오히려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하는 서창대의 이 대사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나를 믿지 마시고 제 욕심을 믿으십시오."
자신도 빛나는 자리에 서고 싶다는 그 간절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 한마디는, 서창대라는 인물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매력적인지 잘 보여주는 최고의 명대사입니다.
3. 교훈 및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세상을 바꾸기 위한 거짓은 정의일까, 또 다른 부패일까?"
영화 속 김운범과 서창대는 끊임없이 부딪힙니다.
김운범은 "어떻게 이기는지가 중요합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라고 말하지만,
서창대는 "일단 이겨야 세상을 바꾸든 말든 할 것 아닙니까!"라고 받아치죠.
이 팽팽한 논쟁은 비단 1970년대 정치판에만 머무르는 질문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어떤 거대한 목적(성공, 취업, 이익)을 이루기 위해 약간의 거짓말이나 편법을 쓰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니까요.
결국 영화는 서창대의 더러운 꼼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킨 김운범이 비록 당장의 선거에서는 졌을지언정, 수십 년이 지난 후 대중의 떳떳한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는 결말을 보여주며 묵직한 정답을 제시합니다. 수단이 목적을 집어삼키는 순간, 그 승리는 결코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더욱 소름 돋게 리얼한 선거판의 뒷모습. 연기 괴물들의 쫀쫀한 앙상블과 세련된 연출이 돋보이는 웰메이드 정치 드라마 '킹메이커'를 통해 묵직한 여운을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